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이타이 덴노 (문단 편집) === 전설 === 게이타이 덴노가 에치젠국의 개척자라는 전승이 있다. 에치젠은 온통 습지대로 농경이나 거주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었는데, 오호도노미코(男大迹王, 후의 게이타이 덴노)가 이 땅을 다스리면서 우선 아스와야산(足羽山)에 신전을 짓고, 오오미야도코로노미타마(大宮地之靈) 신을 모셔 이 땅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이것이 현재의 아스와야 신사(足羽神社)이다. 신사를 세운 다음 오호도노미코는 지형을 조사한 뒤, 대규모 치수 사업을 펼쳐 구즈류 강(九頭竜川) ・ 아스와야 강(足羽川) ・ 히노 강(日野川)의 3대 하천을 만듦으로써 습기 많은 에치젠의 초원을 개간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에치젠의 평야는 풍요로운 토지가 되어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 오호도노미코는 나아가 항구를 열고, 수운을 발전시켜 벼농사, 양잠, 채석, 제지 등 여러 가지 산업을 발달시켰다. 이후 오호도노미코는 오오키미로 즉위하게 되어 에치젠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 이 땅을 염려하여 자신의 생령(生靈)을 아스와야 신사에 남겨두고, 딸 우마쿠다 황녀(馬来田皇女)를 제주로 삼아 뒷일을 맡겼다. 이러한 전승에 연유해서 게이타이 덴노는 에치젠을 개척한 조신(祖神)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훗날 이를 연극으로 각색한 것이 노(能) 작품 <화광>(花筐)이다. 극 중 게이타이 미카도(繼體帝)는 부레츠 미카도(武烈帝)의 후계자로 선택받고, 총애하던 시테(照日)에게 편지와 함께 꽃바구니를 기념으로 남긴 채 수도로 떠났다. 시테는 게이타이를 그리워하다가 시녀와 함께 미친 여자의 모습으로 수도로 뒤따라 갔고, 마침 단풍 구경을 하러 나온 미카도의 행차 앞에 나타난 시테는 미카도의 와키(從者)에게 밀려 바구니를 떨어뜨리고는 그만 미쳐서, 중국 한(漢)나라의 무제(武帝)와 이부인(李夫人)의 고사를 춤으로 추었다. 곧 그 바구니가 예전 자신이 시테에게 주었던 꽃바구니임을 알아본 미카도는 시테를 맞아들여 수도로 데리고 돌아왔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훗날 안칸 덴노로 즉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